이 책의 저자인 올더스 헉슬 리가 이 책을 왜 썼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 속의 세계관과 대략적인 줄거리를 이해해야 한다. 이 글의 배경은 극도로 발달된 문명에서 시작되는데 이 사회에서는 계급이 존재한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앱실론 총 5 가지의 계급인데 알파가 가장 높은 귀족이며 앱실론이 하등 계급으로서 노동자이다. 계급에 따라서 태생이 다르며 키, 외모, 지능이 계급에 따라 매우 다르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다고 해서 불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인 앱실론은 자신의 노동에 만족하고 알파의 삶을 싫어하도록 세뇌, 조기 교육을 받고 지적으로 우월한 알파는 반대로 앱실론이 하는 노동들을 싫어하는, 각자 계급의 삶은 행복하며 서로 다른 계급의 삶은 불쌍하다고 여기게끔 교육을 받는다. 더 나아가, 모든 불안과 우울감을 떨쳐내어주는 약인 ‘소마’를 보급하여 모든 인류가 ‘행복감‘을 상시 누릴 수 있게 되는 사회가 ’멋진 신세계‘ 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출산인데 이 곳에서는 부모님이라는 존재 사랑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를 소유한다는 개념은 없으며 자유로운 성생활을 누린다. 이와 대치되는 곳이 ’야만인 보호구역‘ 인데 이는 ’멋진 신세계‘ 로부터 단절된, 현재 우리 사회와 비슷한 사회를 이루지만 약간 뒤떨어진 원시인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멋진 신세계‘ 에 의문을 품은 몇몇 인물들과 야만인으로 태어났지만 ’멋진 신세계‘ 출신의 부모를 둔 ’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존‘ 은 야만인으로서 ’멋진 신세계‘ 에 초청받아 많은 관심을 받게 되지만 결국 구역감과 혐오를 참지 못하고 자살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 이루어진 국가는 정말 능률적인 전체주의 국가이다. 권력을 완전히 통제한 정치가들이 그들이 거느린 대규모 관리층을 동원하여 노예 생활을 사랑하는 각 계층들을, 무수한 노예들을 통제한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노예들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인데, 이 ’멋진 신세계‘ 에서는 생명과학과 심리학 등 여러 응용 과학의 발전으로 이를 해낸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매우 많은 것들을 말한다.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 종교, 가족, 사랑, 과학의 발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결국 ’멋진 신세계‘ 에서는 모든 인간이 ’행복하다‘ 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정말 그것이 맞느냐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멋진 신세계‘ 라는 이 책의 궁극적인 주제는 유토피아를 향한 과학의 발달에 대한 의문과 발전에 따른 인간의 알맞은 대응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기존의 우리 인류가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상식들을 모두 깨부숴 가면서도 단순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맞는가? 라는 의문을 던지는 듯 하다.
작가의 말을 참고해보자면, 유토피아는 1932년 에만 해도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우리 인류에게 가까워졌다. 작가가 초판을 낸 1932 년 만 해도 작중 ’멋진 신세계‘ 의 내용을 600년 후의 까마득한 미래로 설정하였었는데, 15년이 지난 작가의 말에 따르면, 발전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 100년도 가기 전에 ’멋진 신세계‘와 같은 ’공포‘가 우리 인류에게 닥칠 가능성이 상당히 많아진 것 같다고 한다. 작가는 이렇게 미래를 예측했다.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성취하려는 어떤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로 이루어진 종족을 창출하는 수단으로서 응용과학을 이용하고 분산화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 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선택은 원자탄의 공포에 뿌리를 두고 그로 인해서 문명 세계를 파괴하게 될 수많은 무장한 민족주의적 전체주의 국가의 형태다. 다른 한 가지 선택은 전반적이고 급속한 기술상의 발달로 유발된 사회적 혼란에 의해서 생성되고, 능률성과 안정의 필요성에 따라 유토피아라는 복지 독재사회로 발전하는 하나의 초국가적 독재 체제다. 인간은 선택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책을 읽은 후, 저자가 말하고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어ᄄᅠᇂ게 나에게 적용해 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크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의문과 고민을 두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 번째로는,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던 모든 전통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관습과 개념들 (결혼, 가족, 사랑, 자아실현, 성취에 대한 보람참)을 통해 누리는 행복과 기쁨이 나은가 아니면 책에 나오는 ’소마‘처럼 복용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한 정의 알약과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앱실론들이 받는 세뇌 교육을 통해 자신의 태생에 만족하며 사는 ’노예 생활을 사랑하는 노예의 삶‘ 이 나은가 라는 점이다. 나는 전자와 후자의 경우를 지금 내 군생활과 내 인생 전체에 적용해보고 비교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 사회는 ’소마‘처럼 즉각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알약은 없고 생물학적인 태생부터 계급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각적인 행복을 누리는 것들. 도박, 스마트폰, 게임, 무분별한 성관계, 폭력, 범죄 등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으며 부모의 재산이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자녀의 삶은 마치 멋진 신세계에서의 계급 제도를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지금,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더 권장되는 행위는 전자인가 후자인가를 생각해보면 모든 이들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내 군생활에 바로 대입해보자면, 군인으로서 주특기 훈련을 할 때, 체력 단련을 할 때, 작업을 할 때 흔히 말하는 ’가라‘를 쳐서 얻는 행복보다는 정직하게 땀 흘려 얻는 성취감이 더 나을 것이다. 개인 정비 시간 때는 스마트폰에 사로 잡혀 모든 개인 정비 시간을 헛되게 날리기 보다는 헬스를 하고, 동기와 어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군생활이 될 것이다. 나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입대하였었고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즉각적으로 얻는 행복 (사이버 도박, 스마트폰 중독 같은 것들 ) 보다는 그 과정과 성취를 통한 자아 실현이 더 나은 것이라는 생각을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 의문에서는 성취나 자아실현의 종말에 대한 것들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물학과 심리학 등의 응용과학의 발전에 따라 정말 ’멋진 신세계‘처럼 별다른 노력 없이 모든 순간순간이 행복하며 우울감을 느낄 시간도 없이 ’소마‘ 한 정을 통해 행복을 항상 느낄 수 있다면 정말 내가 첫 번째 의문에서 내린 결론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일까 라는 생각이었다. 속된 말로 완벽한 가라는 진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소마‘ 같은 행복에 대한 완벽한 가라가 존재한다면 전통적인 행복 추구 방법을 계속 지켜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냐 라는 생각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전통적인 행복 추구 방법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마‘와 전통적인 개념 중 무엇이 우월하다 라는 우위를 내가 완벽히 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가 추구해왔던 모든 개념들이 소멸하는 것이 무서웠다. 극단적인 과학의 발전이 항상 윤리적인 문제를 낳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멋진 신세계처럼 과학이 발달하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이러한 과학의 진보에 어떤 자세로 대응해야 할지 정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다.
’멋진 신세계‘는 다가올 과학·기술의 진보와 그에 따른 행복에 관한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라는 의문을 충분히 갖게 해주었던 훌륭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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